[yeozawa.com] 남녀상열지사 (男女相悅之詐)
"공수철" 나쁜 넘, 그러나 미워할 수 없는 넘 - 드라마<엄마야누나야>중에서 (2001.4.1 )
공수철, 나쁜 넘. 삼 년간 조강지처'처럼' 동거했던 신행자를 버리고, 새로운 사랑을 찾아가 버린 망종. 구미에서 조폭들에게 빠져나와 사고무친 서울로 도망왔을 때 신행자는 그를 목숨 걸고 지켜줬다. 결혼하자고 먼저 말해놓고선, 공수철은 달아났다. 나쁜 자식, 못된 자식, 혼인빙자 사기범, 파렴치범. 공수철은 나쁘다.
하지만 자칭타칭 '쓰레기' 공수철의 새로운 사랑에 대한 응원이 만만치 않다. '신밧드 머리', 빤빤한 머리, 약간의 배짱, 그리고 수완, 싸움솜씨, 그 외에는 없다. 공수철, 이 천하의 망종을 과감하게도(!) 오늘의 관능남으로 뽑아 본다.
드라마 <엄마야 누나야>에서 안재욱은 약간의 변신을 했다. 아주 약간, 그는 평소에는 평범한 청년의 연기를 한다. 하지만 가끔 멜러드라마의 뻑 가는 히어로로 변신을 하는 재주를 가졌다. 예컨대 그는 새로운 드라마를 맡으면서 기존의 '모범성 머리' - 예컨대 드라마 <짝>에서 선보였던 - 를 살짝 밑으로 내리고 눈빛을 날카롭게 바꾸더니, 록커 '강민'이 되어 버렸다. 드라마 <별은 내 가슴속에>의 강민은 명백히 테리우스를 벤치마킹한 캐릭터였다.
백 번 양보해도 악역에 가까운 이 남자에게 왜…?
생긴 것부터 비슷하지만, 인물 자체의 상황이 테리우스하고 똑같다. 부잣집 아들, 어머니의 부재, 그리고 예술에의 열정, '캔디'하고 똑같은 '최진실'과의 인연 등등…. 여하튼 일단 여자와 이별한 후 몇 걸음 그녀에게서 멀어진 후 갑자기 달려와 키스를 퍼붓는 장면에서부터 깔리는 음악, 뭐 이런 로맨틱 시퀀스 등에는 그를 당해낼 장사가 없다(최근에는 시트콤 <세친구>에서 윤다훈이 안연홍에게 이 테크닉을 한 번 써먹은 바 있다).
안재욱은 당시 전국의 여인네들(일부 남정네도 포함해서)을 '뻑' 가게 만들었다. 덕분에 군대에서 막 제대한 '건전미남' 차인표는 그 드라마에서 완전히 그에게 가려서 볼썽 사납게 되었다가, 나중에 '거지왕초'가 되었다는(-_-) 전설이 있다. 어디 국내뿐인가, 강민은 중국과 대만, 베트남을 거쳐 중남미 여성들의 밤잠을 설치게 하고 있다고 한다. 트렌디 드라마였던 <별은 내 가슴속에>는 국제적 히트상품이 되었고 안재욱은 날고기는 할리우드배우들과 상대해도 별로 꿀리지 않는, 전 세계팬을 거느린 배우가 되었다고 한다(몰랐지?).
그러나 안재욱은 국내에서는 강민 이후 다시 <짝>에 등장했던 그런 이미지로 돌아가 그냥 그냥 맡은바 배역만 소화해냈다. 그러다 다시 새로운 매력남으로 등장한 것이 바로 이 '공수철'이다. 백 번 양보해도 악역에 가까운 이 남자에게 왜 여성들은 열광하는 것일까?
"내 진심이 알고 싶다구? 그래, 나 당신 사랑해!"
물론 도덕적인 정당성 차원에서 그 넘을 비난하고 싶은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공수철에 대한 응원은 '모랄'보다는 '사랑'에 관련된 것이다. '장여경'(황수정 분)에 대한 사랑도 혼란 그 자체였다. 이게 정말 사랑하는 건지 아니면 장난하는 건지, 다만 이용할 따름인지….
대본만 보자면 무척 혼란스러웠지만 시청자들은 알고 있었을 것이다. 이 건달놈이 처음에는 '말 못하는 여자'라는 호기심으로 접근했다가 그만, 덜컥 사랑에 빠져 버렸다는 것을. 행자가 맘에 걸려 모진 말 한 번으로 그녀와 이별하려 했으나, 다음날 다시 찾아가"당신이 없으면 견딜 수가 없어. 내가 널 사랑한단 말이야, 젠장!!!" 하는 말로 속내를 털어내고 그녀에게 키스를 퍼붓는다. 정말 이 남자는 사랑을 하고 있는 것이다.
수철: (마주보며) 내 진심이 알고 싶다구? 그래, 나 당신 사랑해. 당신 사랑해서 당신하고 살고 싶어. 저 푸른 초원 위에 그림 같은 집을 짓고, 당신하고 한 번 살아보고 싶다구. 그런데 그거 안되쟎아? 내가 워낙 쓰레기라서, 맛간 놈이라서 그럴 수 없쟎아? 나 같은 놈한테 당신을 사랑할 자격 따윈 없쟎아? 동거하는 여자까지 있는 놈이 언감생심…
'언감생심'이지만, 사랑하는 건 죄가 아니라는 것을 우리는 안다. 그래서 그 사랑을 응원하고픈 것은 인지상정일까. 그럼, '신행자'의 사랑은 뭘까? 사랑하던 사람의 면도기와 수건을 보곤, 함께 잠자리를 같이 했던 남자의 향기 앞에서 그녀는 울고 애원하고 매달리지만, 공수철은 단호하다.
이쯤 되면 혼란스럽기 그지 없다. 만약 내가 수철이라면 여경을 선택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난, 도덕적이니까. 그렇지만 이건 불행한 일인 것만은 확실하지. 수철은 동생 '찬미'에게 "나도 인간답게 살고 싶다. 정말 사랑하는 사람하고…" 라면서 술 먹고 투정 부린다. 행자는 "그럼 나와 산 것은 인간적인 게 아니었냐?"고 악다구니를 부린다.
당신 마음속에도 아마 이런 욕망이…
영화 <번지점프를 하다>에서도 운명적인 사랑이 나온다. 그런데 영화에서는 이병헌의 아내에 대한 사랑을 단호하게 무시해 버린다. 그녀와 함께 했던 사랑도 틀림없이 값진 것이었을텐데, 꼭 '운명적인 사랑'만 사랑인가? 행자와 함께 보낸 시간들, 그 인간적인 사랑들은 더 고귀한 사랑일지도 모르는데….
하지만 그런 거에 집착했다면 공수철이 매력적으로 느껴졌을 리는 없을 것이다. 그는 감정에 솔직하다. 이 '골 때리는' 갈등상황에서 그동안 했던 거짓말들이 들통나자, 이제 그의 본색이 슬슬 드러난다. 그 본색이라는 것은 곧 장여경에 대한 단호하고 거침없는 사랑이다.
아마 당신의 마음속에도 이런 욕망들이 있을 것이다.
"누군가의 운명적인 사랑이 나라면 좋겠다. 그래서 그 누군가가 나를 공수철처럼 사랑해 주었으면 좋겠다. 그 사람에게 나 이외의 것들, 즉 미련이나 사랑이나 도덕 따위의 것들은 모두 허접한 것이 되어 버려야 마땅할 꺼야…. 나를 위해 나머지 어떤 것들도 훌훌 버리고 불을 향해 달려가듯 돌진하는 그런 남정네가 있다면, 얼마나 얼마나 행복할까?”
여인네나 남정네나 이기적일지는 모르지만 오로지 나만을 위해 목숨 거는 그런 사랑에 대한 상상은 한 번쯤 해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공수철은 정말 관능적인 남자다. 일단 사랑을 확신하고 그가 여경에게 보이는 대쉬는 현란하고, 정열적이다. 물론 눈물과 몸짓(수화)만으로 수철 못지 않은 사랑을 뿜어내는 여경도 대단하다. 그래서 이 둘의 사랑에 많은 사람들이 미련 없이 응원을 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행자야, 나 그냥…, 이대로 그냥 놔 주면 안 되겠냐?"
가끔 드라마 게시판에 신행자를 응원하는 사람은 근거없는 왕따를 당하기도 한다.
'사랑이 제일 좋은 거야. 그거지, 그것 외의 가치는 없다구….'
'사랑 절대 이데올로기'의 세계관. 물론 그 이외의 세계에서 뜨거운 맛을 덜 본 어린 친구들이 더욱더 이 부분에 집착하는 것은 사실이다. 그렇지만, 음…, 사실 아닌가? 당신 역시 아마도 당신만을 사랑하는 어떤 사람과 미친 사랑의 노래를 부르고 싶은 욕망이 있을 것이고, 그게 가장 행복한 짓거리임을 알고 있을 것이다.
수철: 행자야, 나 그냥…, 이대로 그냥 놔 주면 안 되겠냐?
행자: 뭐?
수철: 나, 그냥…, 장여경이라는 여자 하고 그냥 잘 되게 놔 주면 안 되겠어?
행자: 뭐라구? ………
수철: 그 여자가 부잣집 딸이래서가 아니라, 그 여자가 잘 나서가 아니라, 그냥 그 여자를 사랑해서 그 여자랑 같이 살고 싶어. 그뿐이야, 행자야. 나도 정말 모르겠어. 처음엔 장난삼아 시작한 건데, 어쩌다 이렇게 되어버렸는지…. 어쩌다가 이 여자를 이렇게까지 사랑하게 되었는지 나도 정말 모르겠어. 근데, 그 여자는 나 같은 놈 어디가 그렇게 좋은지, 나만큼 나 좋아해. 날 사랑한대. 그 여자도 나랑 같이 살고 싶어해.
니미랄, 만약 이 대사를 '장진구'가 했더라면 극악무도한 쌍욕들이 난무했으리라. 하지만 드라마 <아줌마>에서 그는 이미 이와 비슷한 대사를 한 적이 있다. 여기에 행자 같은 '삼숙이'가 대답했지. "네가 날 사랑해야 그게 사랑이야!"
간만에 등장한 '미워할 수 없는 악역'
그런데 우습게도 공수철은 다르다. 공수철은 장진구가 아니다. 장진구처럼 뭔가 사업을 위해 사랑을 했던 것도 아니고 순결을 지켜 준다고 주접을 떤 것도 아니다. 그는 부모도 없고 돈도 없고 가진 건 허세뿐인 쓰레기 인생이다. 이 척박한 세상에서 사랍 답게 살아 보겠다고 악전고투할 즈음, 가진 것 없는 그에게 우연히 찾아든 건 어찌 하다 보니 '사랑'이었다.
"나 같은 놈 어디가 좋은지 몰라도 날 사랑해 주는 사람과 함께 살고 싶어!"
그래서 여경에게 안고 달려가고 키스하고 모든 걸 팽개치고 달아나 버리는 것이다. 이러니 그를 동정하지 않기는 힘든 노릇이다.
공수철은 간만에 TV에 등장한 '미워할 수 없는 악역'이다. 물론 부잣집 딸을 사랑하는 건달은 영화 <맨발의 청춘> 이후 우리나라에도 수십 명쯤 등장했다. 그러나 공수철은 그들과 최소한 '한 뼘쯤' 다르다. 그 한 뼘은 안재욱의 범상치 않은 연기력과, 제대로 된 열정적인 사랑이 조금씩 퇴색해가는 세태에 기인한 것은 아닐까.
사랑은 졸렬한 것이다. 그리고 이기적인 것이다. 하지만 사랑조차 하지 않으면 뭘 어떻게 이세상을 살아가란 말인가. '공수철 - 장여경 커플'처럼, 바라만 봐도 눈물이 나오는 사랑을 해보고 싶은 사람들은 이 부도덕한 사랑에 연민할 수 있을 것이다.
가슴 터질 듯 열망하는 사랑
사랑 때문에 목숨 거는 사랑
같이 있지 못 하면 참을 수 없고
보고 싶을 때 못 보면 눈 멀고 마는 그런 사랑…
- 혜은이의 노래 <열정> 중에서
글 / 이승휘(simba@chollian.net)
http://www.yeozawa.com/love/lovestory/060501/060501,01,0329.htm 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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